[러브스톤악세사리]

무대는 텅 비어있었다. 하긴 청춘에 무슨 액세서리가 필요하겠는가. 맨 얼굴, 가식 없는 목소리, 절망없는 좌절…. 영글지 않았기에 더 아프고 더 소중한 사춘기의 한때를 그려내기에 오히려 텅 빈 무대는 적절해 보였다.

빈 공간은 철저히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로 채워졌다. 시험에 짓눌리는 고등학생들의 교실은 의자 몇개로 표현됐다. 무대 뒤 벽면은 간단한 영상과 조명 등으로 한순간 사이버 공간으로 바뀌는 재치를 발휘했다.

시작은 발랄하다. 치기어린 남자 고등학생들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안무와 노래, 10대의 익살맞은 유머가 묻어나는 무대로 펼쳐진다. 하필이면 시험 보는 날 전학와 ‘재수없는 놈’으로 동정을 샀던 영민(박해수)은 전체 수석을 차지한다.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시험성적이 오르지 않아 초조해하는 선규(맹주영)는 부정행위(커닝)의 방법이 담긴 블로그를 소개해준 영민과 친구가 된다. 모범생인 수희(전미도)는 성적은 좋지만 왠지 삐딱해 보이는 영민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뮤지컬 ‘사춘기’는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100여년 전 쓰여진 원작은 종교학교가 배경이다. 록음악과 독특한 무대, 적나라한 성묘사 등으로 화제를 모은 브로드웨이작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원작이 같다. 2008년 한국판 창작으로 만들어진 ‘사춘기’는 종교를 빌려 억압을 나타낸 원작과 달리 대학입시, 부모들의 지나친 기대, 외모지상주의 등을 가져왔다. 인터넷 채팅이나 블로그 등으로 요즘 사춘기들의 일면을 그리기도 한다.

1막은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2막은 다소 처지는 느낌이다.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영민과 부정행위가 발각돼 자살로 치닫는 선규, 갑작스레 찾아온 첫사랑으로 영민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희의 줄거리가 밀린 숙제하듯 결론에 도달한다. 극의 무거움을 덜기 위해 일부러 삽입된 듯한 ‘아빠의 청춘’ 노래 장면 등은 진부한 느낌이다. ‘바바리맨’ 등장이나 영민의 친엄마가 술집 마담이라는 설정 등도 70~80년대를 연상시켜 어색하다.

하지만 ‘사춘기’는 곳곳에서 빛난다. 초연임에도 귀에 들어오는 박정아 작곡가의 노래들이 인상적이다. 신인들로 안정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노래 또한 길들여지지 않은 신선함이 매력있다. ‘사춘기’는 뮤지컬 소재의 확장과 신인발굴, 원작이 같은 브로드웨이 작품과의 맞대결 등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뮤지컬 ‘사춘기’가 제대로 된 사춘기를 보낸 후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궁금하다. 작 이희준·연출 김운기. 9월7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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